난임 부부에게 시험관 아기 시술 과정은 하루하루가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기도 하고 눈물 마를 날 없는 조마조마한 시간의 연속이죠. 특히 낮은 피검사 수치나 작은 아기집 크기를 마주하면 수십 번씩 검색창을 붙들고 불안해하게 됩니다. 이 글은 3일 배양 10일 차 낮은 피검사 수치(21)부터 아기집과 심장소리 확인, 한 고비를 넘겨 11주 차에 난임병원을 졸업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저의 경험을 담아 정보성 에세이 형태로 정리한 기록입니다. (※ 본 포스팅은 개인의 난임 치료 및 임신 유지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시험관 시술 과정과 처방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정확한 의학적 판단은 반드시 담당 주치의의 지침을 따르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시험관 아기를 준비하며 겪었던 가장 조마조마하고 눈물 마를 날 없었던 순간부터, 마침내 난임병원을 졸업하기까지의 과정을 적어보려 합니다. 시험관 아기는 정확하게 배양 일수와 이식 날짜를 알고 있기 때문에 주차에 맞는 성장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하죠. 저는 3일 배양 배아 2개를 이식하고, 이식 10일 후 피검사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를 들으러 가기 전날, 참지 못하고 임신테스트기에 손을 댔고 두 줄을 확인했습니다. 아침부터 남편과 울고 불고 기뻐했는데, 다음 날 마주한 피검사 결과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3일 배양 10일 차, 피검사 수치 21
피검사 결과 21이에요. 임신입니다.
수치 21. 높지 않은 숫자였습니다. 임신은 맞지만 안전하게 높은 수치가 아니라 화유로 이어질 수도 있는 불안한 수치였죠. 저는 결과를 듣고 얼마나 절망했는지, 남편과 "우리 코로나 때문에 신혼여행도 제대로 못 갔으니 해외여행이나 가서 다 털어버리고 다시 시도하자"며 비행기 표를 알아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틀 뒤 두번째 피검사까지는 주사와 질정 처방을 그대로 유지하자라고 저를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피검사 결과, 50.(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48이었다고 함.) 더블링이 되었습니다.
담당 선생님께서는 "솔직히 수치는 객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더블링응 잘 됐으니 약을 세게 써봅시다"라며 처방을 바꿔주셨습니다. 자연적으로 호르몬이 나오지 않아 인위적으로 주사를 써야 하는 시험관 과정에서, 선생님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주사 용량을 2배로 늘렸습니다. 면역력 수치를 낮추는 콩주사와 프로게스테론(타이유) 주사도 추가되었죠.
그리고 3일 후 진행한 마지막 피검사, 289. 정말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선생님도 훅 뛴 수치를 보며 프로게스테론 처방이 잘 맞았다며 칭찬해 주셨고, 드디어 1주일 뒤 아기집을 확인하기 위한 초음파 일정이 잡혔습니다.
임신 5주: 작은 아기집과 난황, 그리고 걱정의 시작
주차에 맞게 잘 커가는 게 중요한 시험관 임신이기에, 아기집부터 난황, 심장 소리까지 매주 마주하는 일정은 정말 심장이 쪼그라드는 시간들이었습니다.
5주 0일에 마주한 아기집은 정말 작았습니다. '작은 아기집은 예후가 좋지 않다'는 수많은 후기들을 보며 또다시 걱정병이 도졌지만, 담당 선생님은 "아기집이 작으니까 프로게스테론 유지하고 콩주사 맞고 가죠"라며 든든하게 다독여 주셨습니다. 1주일은 너무 길다며 4일 뒤에 다시 보자고 하셨고, 5주 4일에 찾은 병원에서는 동그란 난황도 생겨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작은 아기집 크기 때문에 물을 많이 마시고 1주일에 두 번씩 콩주사를 꾸준히 맞았습니다. 그리고 매일 거의 매끼니마다 소고기를 먹었습니다. 수분 섭취와 단백질이 아기집을 키우는 데 제일 좋다는 말을 듣고 정말 질리도록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때 많이 먹었던 소고기 덕분에 이후 임신 기간에 소고기는 거의 입에도 대지 않았어요.
임신 6주: 우렁찬 심장 소리와 7~11주 난임병원 졸업까지
다시 1주일 뒤, 임신 6주 3일. 드디어 동그란 난황 옆에 다이아몬드처럼 열심히 깜빡이는 아기가 보였습니다. 심장 소리는 130bpm으로 우렁차게 뛰어주었고, 주수에 맞게 크기도 잘 따라와 주었습니다.
여전히 아기집 크기가 작다는 이야기에 콩주사와 소고기 식단을 병행하며 마음을 다잡았고, 9주 차가 되어서야 드디어 "아기집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진료실에서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매일을 걱정과 불안으로 살았지만 한 고비 넘겼다는 안도감이 밀려왔습니다.
9주 차부터는 쓴 입덧이 시작되어 울렁거림과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입덧약의 도움을 받아 가며 버텨냈습니다. 그리고 과거 한 차례 겪었던 계류유산의 주차인 11주 차가 되었습니다. 마음 한구석의 긴장을 놓지 못했지만, 마침내 "이제 잘 크고 있으니 분만병원으로 옮기셔도 되겠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같은 걱정을 하고 계신 분들께
낮은 피검사 수치나 작은 아기집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 졸이고 계실 전국의 난임모 분들께 제 기록이 작은 위로와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수분과 단백질을 든든하게 챙기며 우리 아이의 생명력을 믿고 기다려 준다면, 생각보다 아이들은 훨씬 더 강하게 잘 버텨준답니다. 이 긴 터널을 묵묵히 건너고 계신 모든 분들의 졸업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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